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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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아이 학교 축제였다. 일손이 부족하다는 연락에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고 몇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또 그날은 12시부터 3시까지 하는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에 처음 참석하는 날이기도 했다. 학부모들한테 양해를 구하고 부랴부랴 달려간 그곳에서 정갈한 혼자만의 밥상을 받았다. 음료 한 잔도 스스로 가져다 먹지 못하게 하는 친절함에 기분 좋은 불편함을 느꼈던 것 같다.

 

어색함 사이로 음악과 동영상이 흐르고 앞에서 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위한 것처럼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이곳에선 눈치 볼 필요 없이 마음속 깊은 얘기를 해도 되겠구나 싶어 말 잘 듣는 학생처럼 내 인생 가장 추웠던 날 이야기를 꺼냈다. 결론은 같은 조원 두 분한테 가르침을 듣는 걸로 끝이 났다. 네 입장에서만 얘기하는 거라고. 나보다 나의 가족을 더 잘 아는 분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꺼낼 생각도 못 했는데... 이제부터 적당히 좋은 얘기만 하기로 했다. 전체 나누기 시간에 소감을 얘기하라는데 차마 조원들을 앞에 두고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어 아무 할 말이 없다고 말해버렸다.

 

행운이 나에게 온 거라고, 내 인생은 이제 달라질 거라 믿었던 지난 일주일은 온데간데없고 세상이 온통 잿빛으로 보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하기를 수차례. 첫날 번호를 알려 준 맘프 선생님 중 한 분께 전화를 걸었다. 남에게 부탁을 잘 하지 않는데 이 상태로는 6주가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가지 않던 길로 한 걸음을 내디뎌 본 것이다. 한 시간 남짓 내 얘기를 들어주던 그분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몇 해가 흘렀다. 맘프를 마치고 그 언저리 어딘가에 발끝을 올려놓은 채로 조금씩 치유활동을 했다. 늘 열심히 했던 것은 같은데 항상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 몇몇과는 크게 다투기도 하고 불편해지기도 했다. 이렇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인지 남한테 상처만 주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고민해 봤는데도 어느 순간엔 자신이 없기도 했다. 전처럼 나만 참으면 되는데 자꾸 미운 오리 새끼를 자처하는 것 같아 외로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람들에게 꼭 해야 하는 말을 예전처럼 화내지 않고 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확실히 전과는 다른 여유가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를 설명할 길은 없다. 언젠가부터 멈추다시피 한 내 마음의 키가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행복해도 많이 불안하지 않다. 언제 올지 모를 불행을 대비해 미리 걱정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어쩌면 3년 전 그날이 긴 축제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같은 조원 중 한 분이 마지막 회차 전체 나누기 시간에 함부로 판단하고 말해서 정말 미안했노라고 했던 그때부터 사실 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걸, 시간이 좀 오래 걸리겠지만 나도 달라질 거라는 것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다.

 

글 :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이윤구 치유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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