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마음에 집중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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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이나 늦었다. 첫 날인데. 회사 생활을 정리할 때라, 퇴근 후 최대한 서둘러도 그 시간이었다. 도착하니 이미 뭔가 잔뜩 지난 느낌. 먼저 온 세 분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는데, 나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며 시간을 보냈다. 활동가라는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바보처럼 배시시 웃으며 괜찮다는 소리만 했다. 마지막에 함께 시를 보고, 읽을 즈음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앗! 하지만 이게 웬 일인가. 마치고 나가려는데 문 앞에 줄줄이 서더니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주고 있었다. 틈을 봐서 재빨리 빠져나가려다 잡혀서 안겼다. 두 번 안겼다.

 

두 번째 날에 첫 밥상을 받았다. 나만의 작은 쟁반에 정갈하게 밥이랑 국이랑 찬들이랑. 늘 일하느라 바쁘셨던 엄마에게는 받아 보지 못했던 밥상이었다. 어색했다. 따뜻했다. 2회차부터 마지막 날까지 빠지지 않고 제 시간에 갔다. 가리는 음식 많아서 백반은 절대 안 시켜 먹는데, 그 밥상은 받을 때마다 참 좋았다.

 

모둠별 이야기 시간에 난 열등생이 된 기분이었다. 다들 사오십 년을 살며 우여곡절이 많은데, 나는 서른다섯 해 동안 참 무던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우리 조에서 나는 거의 감탄사와 탄식 담당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러던 중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말’을 주제로 받았을 때, 나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할머니 생각이 났다. 내가 초등학교 다니는 코찔찔이 꼬맹이였던 시절, 할머니는 살이 많이 쪄서 어린 내게는 양 손으로 모두 안아도 손끝이 닿지 않을 정도셨는데 나는 매일 밤 할머니를 꼭 안고 잤다. 나는 잠버릇이 아주 고약해서, 자는 사이에 할머니를 올라타고 넘어갔다가 다시 반대편에서 올라타고 넘어오기를 여러 번 했었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추억하는 자리에서 여러 번 이야기 할 때마다 재밌게 느낀 추억이라며 웃는 내게 문득 이야기를 듣던 조원이 혼잣말처럼 문득 물었다. “그런데 창석샘이 그러면 할머니는 제대로 잠 못 주무셨을 것 같은데요?”, “네? 아……”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한 번도 나를 깨운 적이 없었다. 할머니 곁에 잔다고 조르는 나를 거절한 적도 없으셨다. 나는 참 고요하고도 커다란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에서 ‘착하게만 살면 되지’하며 안아 주시던 분이셨다. 프로그램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밤길을 걸으며, 돌아가신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와락 안겨 잠들고 싶었다. 그리고 살아갈 힘이 속 깊은 데서부터 가득 차올랐다.

 

나의 맘프(‘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줄임말) 6주는 그렇게 눈물 한 방울 없이 지나갔다. 그 후 공감토크, 치유원리와 구조 특강, 프로그램의 이해, 활동가 역할 교육을 통해 조금씩 더 맘프를 배웠다. 이 배움이 좀 묘한데, 내용은 아주 단순한데, 교육 하러 오기만 하면 맘프를 먼저 경험하고 그 후로도 계속 맘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도 얼떨결에 맘프 비슷한 걸 하게 된다. 교육 때마다 차곡차곡 ‘맘프 경험’이 쌓인다고 할까? 

 

마침 중랑구에서 2017년을 여는 맘프가 있다고 공지가 올라오고 나도 ‘오퍼레이터 활동가’로 참가하게 된다. 보건소 담당자, 다른 활동가들과 함께 사전 모임은 물론 당일 날에도 두 시간 먼저 도착해서 자리 세팅부터 다과, 치유밥상 준비, 진행 리허설, 사전 회의까지 마친다. 여러 번 진행 하시는 분들도 이번엔 어떤 분들일까 설렘을 감추지 않고, 처음인 나는 긴장해서 괜히 더 이리저리 서성인다. 마침내 한 사람, 두 사람 쭈뼛쭈뼛 나타나 자리를 채우고, 개인 밥상을 가져다주고 차, 커피 대접에 어리둥절하는 예상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렇게 3주가 지나고 이제 내일이면 4주차다. 내가 경험한 맘프와 비슷한 듯 또 많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자기소개부터 울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야기 하는 내내 울다 웃다 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섞이지 못할 것 같은 모둠원들도 연락처를 주고받더니 프로그램을 마치고 자기들끼리 커피 마시러 가고, 1주차부터 활동가만큼 자기 모둠원을 지극하게 챙기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모둠원이 반이나 빠져 걱정했던 두 사람은 어느 새 언니 동생 하기도 한다. 아, 이분들은 지금 저마다 자기 맘프를 하고 있다. 하나의 맘프지만 함께 하는 활동가, 참여자 수만큼이나 다른 맘프들이 진행된다. 이제 서울의 다른 구에서, 서울을 넘어 다른 지역에서 온갖 색깔의 맘프들이 이어질 것이다. 언젠가 봤던 장면 같은 느낌으로, 뒤에서 참여자분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활동가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진행하던 활동가는 한 술 더 떠서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참여자를 꼭 껴안으며 같이 운다. 그 모습들에 나도 자꾸만 표정 관리가 안 된다. 바보 같이.

 

우리는 지금 맘프 중이다.  

 

글 :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 치유활동가 최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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